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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온이의 서구역사여행1 [치평동 선사유적]
개발자
날짜 2018-02-27 조회수 939
첨부파일
해온이의 서구 역사여행

최 혁 지음
원고 도움 정인서
사진 도움 이현숙 정인서 최정부 서구청 조선대박물관

빛고을에 큰 산이 하나 있다. 어머니 가슴처럼 너그러운 산이
빛고을을 따뜻이 품어 준다. 우리가 무등산이라 부르는 산이다.
그 산에 한 사람이 살았다.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산에서 혼자 하늘을 보며 지냈다.
어느 날 그 사람은 산을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저 아래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산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처음으로 산을
내려오는 터라 어디로 내려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길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냥 멀리 보이는 평지를 향해 무작정 내려가기로 했다.
돌부리에 채이고 잡목 가지에 히며 부딪히며 넘어지면서도
결국 내려왔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었고 발도 성치 않았다.
산에서 보았던 계곡 물줄기와 비슷한 물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늘날 광주천이라는 부르는 곳 가장자리에 앉아 땀을
훔친 뒤 상처를 물로 씻고 발도 담그며 잠시 숨을 골랐다.
한낮이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높고 파랬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산 위에서 볼 때와는 다른 높은 하늘 모습이었다.
“아! 이런 하늘이 있구나, 내려와 보니 다르네.” 그 사람은 혼자
속으로 생각한 채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내를 따라 걸었다.
구불구불한 내는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었다. 물속을 헤엄치며 다니는 물고기도 있었다. 처음
보는 물고기를 구경하느라 한참 멈추어 섰다.
그 사람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고 배가 고파오고 몸에서
힘이 혼자 지냈으니 여기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걷고 또
걸었다. 지금의 학동, 불로동, 양동, 광천동, 치평동에 이르니
해가 뉘엿뉘엿했다.
해거름 때가 다 되고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아름드리 큰 나무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내일은
다른 세상 모습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
봤다. 처음 내려온 곳이긴 하지만 이곳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의 별을 보았다. 어둠을 비추는 큰 별과 점박이 별들이
여기서도 신기했다. 가끔씩 유성이 꼬리를 늘어뜨리고 하늘을
가로질다. 그 사람은 유성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저
떨어지는 별을 타고 이곳으로 내려온 것일까?”
그 사람은 별을 타고 내려온 기억은 나지 않았다. 아마도 별을
타고 내려온다면 무척 재미가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됐다. 산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와는 달랐다. 산에서는
해가 더 일찍 떴고 동물들의 움직임과 새들의 지저귐이 늘 귓가에
들려왔다. 이곳은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그 사람은 큰 나무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까운 곳에는
여기저기 작은 언덕 같은 것들이 있었다. 사방에는 멀리 산들이
보다. 마치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병풍을 쳐놓을 듯 빙
둘러 있는 것 같았다.
나무에서 내려다보니 산에서 보던 동물들의 움직임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큰 짐승들처럼 빨라 보이지 않았다. 무서운
동물은 아닌 듯했다. 혹시 모르니 나무 위에 당분간 올라가
있기로 했다. 산에 있을 때나 이곳이나 큰 동물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다.
그 사람이 산에 있을 때다. 한번은 멋모르고 큰 동물에게
달려들어 싸우다가 큰 상처를 입었던 적이 있다. 다행히 다른
동물이 그 동물에게 공격하는 동안 그 사람은 도망칠 수 있었다.
겨우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그런 기억이 떠올라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무 주위를
내려다보니 자신의 발자국 과 비슷한 다른 발자국이 보다. 그
사람은 자신의 발자국보다 조금 작은 발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 밤 사이에 큰 나무 근처에 누군가 왔었던 모양
이었다.
곧이어 그 사람은 나무 주변에서 움직이는 동물을 봤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모습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무 위에서 숨을 죽인 채
유심히 쳐다봤다. 그 동물은 나무 가까이
오더니 그 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 발자국의
주인을 찾는 듯했다.
나무 위에서 보니 그 동물은 자신과
무척 닮아 보다. 다만 덩치가 커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무 위에서 소리를
쳤다. 산에서는 소리를 지르면 작은
동물들은 도망갔기 때문이다. 그 동물도
깜짝 놀라 후다닥 도망을 갔다. 다행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 동물이 나타나지 않아 멀리 갔나보다
생각하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다시 배에서 소리가 났다. 산에서
처럼 작은 동물이 있으면 좋겠지만 어제처럼 냇가로 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들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동안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물길이 넓어서인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큰 물속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산에서는 물길 주변에 크고
작은 바위가 있어 잡을 수 있는 버팀이
있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물길 가에 앉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 사람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이에
옆에 다른 동물이 똑같은 모습으로
앉았다. 그 사람은 물길에 비치는 다른
동물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사람은 뒷걸음질 치며 철퍼덕 물가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 동물은 멀뚱하게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동물은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 그 사람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를
쳐다봤다. 가슴이 붕긋이 솟아올라 있고 엉덩이도 그 사람보다
더 둥그스럼하고 넓적해보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았다.
서로 무서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침에 그 사람이 내지른 큰 소리에 놀라 도망을 쳤다가 큰
나무에서 떨어진 곳에 숨어 있었던 자신과 닮은 동물이다.
그녀는 소리를 낸 동물을 멀리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나무에서 그 동물이 내려왔다. 그녀는 그 동물을 보고
자신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동물이 물길을 찾아가니 그녀도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지 않고
따라갔다. 그 동물이 물길 속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는 모습이
그녀의 평소 행동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무섭지
않다는 생각에 살금살금 다가가서 옆에서 물속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처음에 마주쳤을 때 서로 동물이라고 여겼다가 자신들과 닮은
모습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한편으로 반가웠다. 이내
그녀가 물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물고기 두 마리를 잡아왔다.
그녀는 그 사람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건넸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물고기를 먹었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치평동에는 구석기 시대 12만5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삶의 흔적이 있다. 인류가 언제 출현했는지에 대해 몇 가지
학설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접어두겠다. 우리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직립보행이 가능해지고 손을 쓰는 요령이 생기면서
도구를 사용할 줄 알게 되었다. 크고 작은 돌을 가지고 돌도끼,
돌칼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것들은 과일을 따거나 물고기나
동물을 잡는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나뭇잎이나 풀을 으깨고
다지는 데 사용했다.
석기들은 이처럼 생산도구의 하나가 되었다. 석기를 다듬는
기술로 본다면 구석기 시대는 전기(350만~12만5000년 전),
중기(12만5000~4만년 전), 후기(4만~1만년 전)로 나뉜다고 한다.
구석기 전기는 큰 석기 하나를 가지고 이것저것 다 하는 여러
돌칼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것들은 과일을 따거나 물고기나
동물을 잡는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나뭇잎이나 풀을 으깨고
다지는 데 사용했다.
석기들은 이처럼 생산도구의 하나가 되었다. 석기를 다듬는
기술로 본다면 구석기 시대는 전기(350만~12만5000년 전),
중기(12만5000~4만년 전), 후기(4만~1만년 전)로 나뉜다고 한다.
구석기 전기는 큰 석기 하나를 가지고 이것저것 다 하는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
구석기 중기는 큰 몸돌에서 떼어낸 돌조각이나 작은 돌조각을
잔손질을 해 여러 용도의 석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치평동에는
중기 구석기의 흔적이 있다. 구석기 후기에는 쐐기를 대고
형태가 같은 여러 개의 석인석편인 돌날격지를 만들 수 있었다.

치평동은 광주 최초의 인간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치평동
인근의 광주천과 극락강과 산강으로 접어드는 물길의
동남쪽에 형성된 30~40m의 낮은 구릉지를 말한다. 1996년
조선대학교 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 이 지역은 9개의 지질층이
있었고, 그 지질층에서 2개의 구석기 문화층을 확인했다.
치평동의 구석기 2문화층은 후기 구석기의 늦은 시기에
해당한다. 구석기 1문화층은 적어도 중기 구석기 시대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위의 이야기는 이 시기에 살았던 두
남녀를 가상으로 그려본 것이다.
치평동 구석기 유적은 산강 유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구석기
유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광주의 중심이 서구이고
그 중에서도 광주의 신도심인 상무지구와 광주시청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에 구석기인들이 살았기 때문이다.
치평동 유적이 있던 곳은 한 때 대한민국 군 장교 양성의
요람이었던 상무대 지역이었다. 1994년, 상무대가 장성으로
옮겨가면서 지금 치평동 전남중학교 주변 일대가 구석기인들의
보금자리다.
광주 최초의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는 치평동 유적지는
당시의 몇몇 흔적만 찾아내고 다시 흙으로 덮어졌다. 그 위로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수 만년이 흐르면서 구석기인의
주거지던 막집은 이제 21세기의 주거지인 아파트로 변했다.
아파트 빌딩 속에서 수만 년 전의 구석기인의 막집을 오버랩
하기는 쉽지 않다. 누군가 증강현실 기술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본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치평동 유적은
아직까지는 광주에 남은 인간 최초의 흔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빛고을 광주의 서구는 지금도 광주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역사는 흘러 마한, 백제, 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의 시대이다.

서구는 18개 행정동이 있다. 양동, 양3동, 농성1동, 농성2동,
광천동, 유덕동, 치평동, 상무1동, 상무2동, 화정1동, 화정2동,
화정3동, 화정4동, 서창동, 금호1동, 금호2동, 풍암동, 동천동
이다.
서구의 면적은 47.88평방킬로미터, 세대수는 12만4,663세대
로 광주 전체 세대인 59만2,818세대의 21퍼센트가 거주하고
있다. 인구는 2017년 말 기준으로 30만6.957명으로 광주
인구인 126만3,770명의 21퍼센트가 살고 있다. 서구의 남자는
15만977명, 여자는 15만5,980명으로 여자가 더 많다.
서구의 심벌마크는 하늘과 산, 강을 표현하여 아름다운 생활
터전인 서구의 자연환경을 나타낸다. 구석기시대로부터 연연히
이어온 파란 하늘과 광주천, 극락강, 산강을 상징한다.
역동적인 태양의 모습은 광주의 새 심장으로서 광주가 서구의
중심이며 서구를 이루어 나가는 원동력을 의미한다.
서구의 나무는 느티나무이고, 꽃은 목련이다. 서구의 새는
‘해오리’이다. 해오리는 백로의 우리말인 해오라기의 준말로
환경 친화적인 아름다운 서구를 의미한다. 최근에 디자인된
서구의 마스코트인 ‘해온이’는 서구의 심벌과 해오리를 연상케
한다. 해온이는 ‘따뜻하고 온정이 가득한 으뜸서구’라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부터는 해온이가 이야기하는 우리 서구의 역사여행 이야기로
빠져들어 가야겠다. 독자 여러분도 동행하길 기대한다.
서구의 전체적인 자연 모습을 먼저 살펴본다. 서구의 남쪽은
무등산 줄기를 타고 뻗어 내려온 금당산(304m) 개금산(179m)
송학산(212m)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동쪽의 금당산을 제외하면 백마산(162m) 사월산(102m)
짚봉산(128m) 등은 구릉성 산이다. 어느 산이든 해온이가 산책할
수준의 좋은 산이다.
서구의 북쪽은 광주천을 중심으로 평지가 넓게 퍼져있고, 서쪽의
극락강과 합류하는 지점은 넓은 범람원으로 자연제방이 길게
발달해 있다. 그러다보니 기아자동차와 같은 대기업과 중소
기업이 있는 광천공단이 들어서기도 했다. 기아자동차는 광주
경제의 3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도심에 분산되어 있던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합한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버스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버스터미널은 쇼핑과 음식점은 물론 화 연극 공연
전시가 있는 유스퀘어로 변신했다. 해온이도 이곳을 즐겨 찾는다.

인근에는 대형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있는가 하면 병원 빌딩
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병의원들이 즐비하다. 해온이는 이곳을
생활의 모든 것을 원스톱 쇼핑하며 즐기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군부대 교육기관이었던 상무대는 장성으로 옮겨지고 그 자리에
5.18기념공원과 그 관련 시설이 있다. 신도심이 곳곳에 형성
되면서 상무지구, 금호지구, 염주지구와 같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호남 최고의 시장인 양동시장은 양동시장, 양동복개
상가, 닭전길시장, 수산시장, 건어물시장, 공구시장, 경열로
시장과 같은 7개 시장이 있다.
서구는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녹색 환경도시다. 운천호수,
풍암호수, 전평호수가 자리해 도시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고,
월드컵경기장과 같은 문화체육시설은 복지서구 건강서구의
자랑거리이다.
서구는 자연풍광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경관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경관 여덟군데를 ‘서구 8경’이라 부른다.
만귀정, 금당산, 풍암호수, 서창들녘의 낙조, 용두동 고인돌,
운천사 마애여래 좌상, 양동시장, 5.18기념공원이다.
해온이는 앞으로 이러한 서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숨은
이야기를 찾아 재미있는 역사여행을 이어간다. 때로는 숨차게
바삐 돌아다닐 기회도 있겠지만 차근차근 해온이의 발걸음은
곳곳을 돌아다닐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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